절이 산에 있는 이유 >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절이 산에 있는 이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마야 댓글 0건 조회 5,644회 작성일 08-10-21 00:00

본문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절이 평지에 큰 규모로 세워졌습니다.
평양 근교의 청암리 절터, 익산 미륵사 터, 경주 황룡사 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불교 전래의 특수성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절을 보면 산지(山地) 가람이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우리나라에 산지 가람이 많은 것은
- 첫째 우리 민족의 뿌리깊은 산악숭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국의 이름 있는 산, 특히 금강산, 오대산 등은 산악
숭배를 기초로 하여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르는 성지(聖地)로 생각하였습니다.

- 둘째 호국(護國)과 호법(護法)의 신념을 가지고 높은 산에 절을 지었습니다. 특히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부산의
금정산 범어사, 경주의 토함산 석굴암 등의 절을 창건하였으며, 백제와 국경을 접하는 지리산 등에 신라의 절이
창건되기도 하였습니다.

- 셋째 통일신라 말기부터 선종(禪宗)의 수행과 관련하여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 절을 지었습니다.

- 넷째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께서 풍수지리사상에 기초하여 산천의 약한 기운을 보살피고 강한 기운을 눌러
주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던 산천비보설(山川裨補說)에 따라서 절을 짓고 탑을 세웠습니다. 산천비보설
은 고려의 태조 왕건에 의해 깊이 믿어져서 고려 5백년 동안에는 도선 국사가 지정한 자리에만 절을 짓도록 하였
습니다.

끝으로 조선시대에 불교를 배척한 정책 때문에 왕릉을 돌보거나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던 몇몇 절을 제외하고는 마을 가까이 있는 절을 모두 없애 버리니 결국 깊은 산중에만 절이 남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bulgyo.or.kr/html/temple/temple_6030.htm (부산불교교육원)

"
Total 45건 2 페이지
자료실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열람
마야
5645 2008-10-21
29
마야
4039 2008-10-16
28
마야
6749 2008-10-13
27
마야
8319 2008-10-10
26
마야
4721 2008-07-08
25
마야
5295 2008-07-08
24
마야
3454 2008-06-18
23
마야
8962 2008-06-13
22
마야
5124 2008-06-13
21
마야
5596 2008-05-30
20
마야
5064 2008-05-15
19
마야
4016 2008-05-08
18
마야
3611 2008-05-08
17
마야
4630 2008-05-02
16
마야
4714 2008-05-02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옥천범음대학 / 주소 : 03721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봉원사내 옥천범음대학
대표전화 02)392-3234 / 팩스 02)392-3239 / E-MAIL : okchunsound@naver.com(교학처)
COPYRIGHT (C) okchunbud.kr, ALL RIGHTS RESERVED.
옥천범음대학 / 주소 : 03721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봉원사내 옥천범음대학
대표전화 02)392-3234 / 팩스 02)392-3239 / E-MAIL : okchunsound@naver.com(교학처)
COPYRIGHT (C) okchunbud.kr, ALL RIGHTS RESERVED.